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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 관심사/공연, 뮤지엄

알폰스 무하 : 더 골든 에이지, 만선호프

by 새콤한딸기🍓 2023. 5. 10.
알폰스 무하 더 골든 에이지 인터파크 입장권

 
알폰스 무하의 작품과 일대기가 담긴 미디어 아트 광고를 접했다. 포스터 넘어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꼭 관람해보고 싶었다. 마침, 그 근처에 친구가 일하고 있었고, 우리는 아름다운 1시간을 보내고 왔다.
 
도슨트는 없어서 가는 버스 안에서 따로 가볍게 공부를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미리 알고 가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 아래는 작품을 보기 전 도움이 될 알폰스 무하의 일대기를 가볍게 정리해 본다.
 
 
 

[  알폰스 무하의 이야기  ]


알폰스 무하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던 체코의 슬라브 지역에서 가난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걸음마 시절부터 미술에 대한관심이 많았고, 종교적인 환경 속에서 자랐다. 매우 뛰어난 알토 목소리 덕분에 성당의 성가대와 성 베드로 성 바오로 대성당 합창단원으로 활동했었다.  비엔나 무대미술회사에서 젊은 화가를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바로 입사 지원하였고 채용되어 19세 나이에 무대미술 수습생으로 일자리를 얻는다.

높은 수준의 문화와 음악의 중심지의 비엔나에서 아름다운 교회들, 박물관, 미술관, 콘서트홀 등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의 주요 고객인 링 극장의 화재로 실직을 하게 되고,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예술가로서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로 결정한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던 무하는 오스트리아-체코 국경지대의 미쿨로프 마을에서 돈이 다 떨어져 버려 하차하였다. 덕분에 무하가 그린 지역 귀족들의 초상화가 그 지역 대주주인 칼 쿠엔벨라 백작의 눈에 띄었고, 그의 후훤자가 되어, 무하가 파리에서 정식으로 미술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1889년 더 이상 백작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서 무하의 공부는 갑작스럽게 중단하였다. 그는 파리와 프라하에 있는 출판사의 책이나 잡지사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파리 연극계의 슈퍼스타인 사라 베르나르가 그녀의 지몽스다 역을 위한 새 포스터를 주문해야 했다. 당시 무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었데, 모든 정규직 직원이 연말 휴가로 비운 상태에서 그녀의 다급한 요청에 의해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무하에게 포스터 제작을 맡기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큰 반항을 일으켜 1895년, 34살에 무하의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디자인한 그의 첫 번째 포스터 '지스몽다'는 오늘날까지 전설인 포스터로 알려져 있다. 길고 폭이 좁은 사각형 안에 실사 크기의 "신성한" 여배우를 표현한 디자인은 파리의 길가에서 보였던 기존 포스터와 완전히 달랐다. 수집가들은 무하의 포스터를 얻기 위해 전단지 붙이는 이에게 뇌물을 건네기도 하고 심지어 밤에 몰래 면도칼로 포스터를 뜯어내는 모험도 하기도 했다.

사라 베르나르는 무하와 단독 포스터 제작 6년 계약을 하게 된다.  이로써 '무하 스타일'이 시작되었고 그 후로 무하는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파리의 예술가 중 하나가 되었다.

 1899년 무하는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파리세계박람회에 선보일 파빌리온 제작에 대한 공식의뢰를 받는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통치 아래 고통받는 슬라브족 상황과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위해 일하는 자신 사이에서 딜레마 고통스러워한다.

파빌리온 작업의 기금 조성 마련을 위해 미국에 가게 되었지만 협찬은 전혀 받지 못하며 좌절을 겪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행복을 얻었다. 그해 자신보다 19살 어린 아름다운 체코 처녀 마루슈카 히틸로바와 결혼한다. 그리고 슬라브 민족을 사랑한 미국 갑부가 '슬라브 서사시' 제작을 후원하기로한다. 그리고 그는 그는 남은 생애를 모두 '슬라브 서사시'제작에 전념한다. 
 
체코와 다른 슬라브 민족의 역사에서 주요 20점의 에피소드를 담은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는 고대의 기원으로부터 중세와 종교 개혁, 합스버그 제국, 슬라브 민족에게 독립을 가져다준 세계 1차 대전 여파에 이르기까지 슬라브 문명의 발전을 그린 작품이다.

체코는, 세계 1차 대전 후 독립을 이룬 지 20년 채 되지 않아 세계 2차 대전 독일 나치 통제를 받았다. 무하는 게슈타포가 첫 번째로 체포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강한 고문으로 건강을 해치면서 1939년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장례식은 독일의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군중들이 참석했다.


이거 가볍게 정리한 게 맞나? 하하.
 
 

롯데 호텔 뒤 롯데 백화점으로!

대충 버스에서 공부하고,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가까이 롯데백화점 9층으로 파워 워킹을 시전 했다. 사진과 같은 롯데호텔 뒤에 1층에 샤넬 매장이 있는 에비뉴엘 건물로 들어가면 된다. 35분간 관람용 본 영상 진행하고, 이후 15분 동안 자유로운 사진촬영이 가능한 영상이 재생된다. 35분 본 영상 동안에는,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서 관람하면 되고, 플래쉬, 삼각대와 셀카봉 금지다.
 
 



 

알폰스 무하의 황금기

그의 일대기 시간 순에 따라서 내레이션, 자막, 음악과 함께 미디어 아트가 진행된다. 알폰스 무하가 파리에서 슈퍼스타 사라 베르나르의 지스몽다 포스터를 만든 뒤 황금기가 시작되면서, 파리 전역마다 그의 "무하 스타일"작품이 거제 되어 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실제로 이런 분위기였을 것 같다.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는 1890-1910 사이 유럽 각지, 미국, 남미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유행한 양식으로 민족과 지역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었다고 한다. 아르누보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미적 쾌락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 건축, 실내장식, 카펫 옷감, 책의 삼화까지 고상한 예술과 대중의 간격을 좁히고 궁극적으로 사람의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이의를 두었다고 한다. 시대의 흐름답게, 알폰스 무하는 아르누보의 대표 화가로써, 자전거, 술, 담배 등까지 다양한 분야에도 작품을 녹였다.
 
 
 
 
 
 

사라 베르나르와 6년간 포스트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그녀가 주인공을 출연한 작품 포스터를 제작했다. 베르나르 님 감사합니다~! 알폰스 무하가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남길 수 있게 해 주셔서 말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메데"작품이었는데, 작품의 살벌함을 너무 잘 묘사해서 소름이 돋았다.
 
 
 
 
 
 

아르누보 하면 보통 덩굴 식물 모티브와 구불구불하고 유연한 선으로 사직된 철제 난간, 섬세한 꽃무늬와 반복적인 패턴, 긴 실루엣의 여인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알폰스 무어의 작품이 그러하다.
 
 
 
 
 
 

‘아르누보(Art Nouveau)’ 회화양식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알폰스 무어(Alphonse Mucha)의 작품에서 긴 머리카락과 늘어뜨린 옷 주름, 그리고 화려한 꽃과 식물의 덩굴 속에 둘러싸여 몽환적이기까지 한 여인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알폰스 무하는 주얼리 디자이너로도 유명하였다고 한다. "네 가지 보석"이라는 작품 제목으로,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4가지 보석 "루비, 에메랄드, 자수정, 토파즈"를 네 명의 아름답고 젊은 여성으로 의인화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선택한 4가지 보석 중 그림 속에서 황금빛 머리에 황금빛 드레스를 입고 턱을 괴고 있는 여인은, 토파즈를 표현하고 있다. 토파즈는 노란색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노랑, 파랑, 분홍, 갈색, 무색" 등 다채로운 색으로 산출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을 단풍잎처럼 황갈색에 가까울수록 가치가 높다. 이를 '임페리얼 토파즈(Imperial Topaz)'라고 부르는데, 지금의 그림은 임페리얼 토파즈가 연상된다.




 
 
 

35분의 영상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1900년 작 <비잔틴 , Byzantine >인데 작품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정보가 많이 없다.
 
 
 
 
 
 

너무나 아름답다.
 
 
 
 
 
 

아르누보의 유행을 제대로 보여주는 알폰스 무하의 '사계'작품이다. 자연의 모티브를 얻은 장식들과 섬세한 색감, 풍부한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4계절을 자연과 여성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사계를 통해 철학적인 면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힘든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오는 인생의 흐름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봄>이다. 내가 봄에 태어나서 그런 걸까? 내가 봤을 때 가장 화사하고 예뻤다. 친구도 같은 생각.
 
 
 
 

 
 

이제부터는 비극이 시작된다. 세계 1차, 2차 대전을 모두 겪은 알폰스 무하는 조국을 위한 <슬라브 서사시>를 제작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확실하게 그림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절망과 공포가 가득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을 했을까?
 
 
 
 
 

 

그림을 통해 전쟁의 고통과 그의 민족적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35분의 본 영상이 끝났다. 이후에는 촬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상이 진행된다. 작품 속에 걸어 다니면서, 나도 함께 작품의 일부가 된 듯하게 찍으면 된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면 내 얼굴이 도화지가 되어 작품영상이 함께 나와서 뒷모습을 찍어주는 게 좋았다. 그 와중에 나를 말도 안 되는 비율로 찍어준 친구, 고마워!
 
 
 



알폰스 무하 미디어 아트 3분 영상




 

 

알폰스 무하 작품을 1시간 감상하고 밖을 나왔다.
선선하고 맑은 공기가 가득한 날이었다.  
이 
날씨를 만끽하며 맥주를 한 잔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을지로 만선호프"를 가보기로 했다. 이걸 이제야 가보다니! 인생 첫 방문이다. 네이버 지도를 검색할 때, 만선호프가 생각보다 여러 개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보니, 그중 본점이 내가 생각한 감성을 가진 곳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뒤에서 "이제 한 물 갔군, 예전 같지 않네"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지금 주변에 공사를 해서 그런 건지, 예전만큼 거리를 점령할 정도로 테이블을 두지 못하고 옛 감성이 많이 축소되었다고 한다. 내가 봐도 그렇긴 하아. 지금 사진에 나온 곳이 전부였다.





 
 

그래도 난 좋은데? 복잡 복잡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 바구니에 내가 생각한 감성이 있었다. 이 감성 제대로 느끼라며 자리를 바꿔준 친구~!
 
 
 
 
 

 

감성 속에 주문된 시원한 생맥주 2잔과 참이슬 1병~!
 
 
 
 
 

 

골뱅이 무침은 정말 맛있었다. 무채가 특히 별미~! 골뱅이도 통통하고 싱싱하니 맛있다. 무채가 생각보다 매워서 소면을 추가했는데, 소면은 생각보다 별로?
 
 
 
 

 
 

만선호프하면 제일 유명한 마늘 통닭 치킨! 배부를 것 같아서 반마리만 시켰다.
 
 
 
 
 
 
 

극락의 조합~! 을지로 만선호프가 회전율이 빠른 편이라, 식재료도 싱싱하니 좋고, 메뉴가 대체적으로 다 맛있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닭다리를 나에게 양보하는 친구, 마늘 소스가 달콤하면서 아삭하게 식감을 돋았다.
 
 
 
 
 
 
 

왜 배고프지? 골뱅이와 마늘치킨은 식욕만 자극했다. 하지만 추가한 계란말이는 생각보다 별로?
 
 
 
 
 
 
 
 
 
고마워 
친구한테 갚아야 할 사랑이 많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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